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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마음의 법만사

안녕하세요! 서울 중랑구 법만사 입니다.^^
“무량한 진리가 머무는 수행 공동체”
‘성불成佛’이란?
現今卽時! 지금,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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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15_219 중도(中道)의 길
250615_219 중도(中道)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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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Buddha)란! ‘깨침을 이룸’, 혹은 ‘깨친 이가 됨’이란 뜻이며, (존재의 본질 이해)
붓다(Buddha)’의 어원적 의미는 산스크리트어 'budh'에서 유래하며,
이는 ‘깨닫다’, ‘이해하다’, 또는 ‘알아차리다’라는 뜻이다.
‘불’, ‘부처’, ‘붓다’는 모두 ‘깨친 이’ 이다.
- 깨달음은 불교의 핵심 개념인 깨달음(bodhi)의 체험과 직관의 통찰 과정을 통해,
깨닫는 만큼의 진리 속에 고통과 무지를 극복해 가는 과정이다.
- 종교는 ‘표층(表層)’과 ‘심층(深層)’ 두 가지 층이 있다. 불교에서 깨침을 주장하고, 성불을 궁극적 관심사로 여기는 부분은 심층이지만, 기복(祈福)에 매여, 깨침의 도리를 잊는 부분은 표층에 속한다. 표층 종교는 각 개인의 일신의 유익을 추구하며 사는 삶이다.
그것을 영위함은 모든 존재의 기본 정서이다.
불교는
사물의 실상을 꿰뚫는 깨달음의 단계를 추구하는 심층적 혜(慧)·명(明)·지혜(智慧)를 탁마, 계발됨에 따라
표층 종교로서의 궁극적 목표가 분명하다. 표층적 관심이 심층적 관심으로 가는 시작 점이고, 단순한 믿음 단계를 지나
육바라밀을 생활속에 행함이,
자연의 황금율 곧!
대 자유인의 길을 펼침이다.
- 중도(中道)는 불교의 실천적이고 극단을 피하고 균형을 이루는 삶의 방식이다.
초기 불교는 고행과 쾌락이라는 두 극단을 피하는 수행의 태도로 설명되었다.
이후, 처한 입장에서 실천과 이해 속에 ‘균형, 심리적 평온, ‘
그리고 올 바른 판단을 지향하는 더 넓은 개념으로 확충 되었다.
- '밝아짐'은 단순히 중도라는 균형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중도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깊은 통찰과 궁극적으로
삼계(三界, 욕계·색계·무색계)를 초월하는 상태이다.
이러한 밝아짐, 깨달음은 무명과 업의 속박을 넘어선 해탈이며,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열반의 경지이다.
만물은 음과 양의 조화
一陰一陽之謂 (일음일양지위도)
繼之者也 成之者也 (계지자선야 성지자성야)
한 번은 음을 취하고, 한 번은 양을 취하는 것이
만물의 근본 원리인 도(道)이다.
도를 이어가는 것은 선(善)이고,
도를 완성하는 것은 본성(本性)이다.  
주역 계사전(周易 繫辭傳)
도마복음 제22절:
“이 젖 먹는 아이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이들과 같습니다.”
제자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아이들처럼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둘을 하나로 하고,
안을 바깥처럼, 바깥을 안처럼 하고,
높은 것을 낮은 것처럼 하고,
암수를 하나로 하여
수컷은 수컷 같지 않고,
암컷은 암컷 같지 않게 하고,
새로운 눈을 가지고, 새로운 손을 가지고,
새로운 발을 가지고, 새로운 모양을 가지게 되면,
그러면 여러분은
그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일견 반대되고 대립되는 것을 반대나 대립으로 보지 않고 조화의 관계로 보는,
“젖먹이 어린아이는 주객(主客)과 내외(內外), 상하(上下), 고저(高低), 자웅(雌雄)
이분법적 의식이 없는 상태”로 풀이한다.
이는 양자택일의 시각이 아닌 ‘양극의 조화’, 또는 ‘초이분법적 의식’을 갖는다는 것으로,
분별의 세계를 초월해 불이(不二)의 경지에 이르라고 말하는 불교의 가르침과 일치한다.

만법일여[萬法一如]